최근 포토로그


[만화] 토쿠히로 마사야(德弘正也),『쿄시로 2030』(狂四郞2030, 1997~2004) (총20권) **** 만화 비평




토쿠히로 마사야(徳弘正也),『쿄시로 2030』(狂四郎2030 , 1997~2004) (총20권)

작가 : 토쿠히로 마사야 (徳弘正也, 1959~ )
일본 연재 : 집영사(集英社), 슈퍼 점프 (1997~2004 연재)
한국 출판 : 시공사, 2002~2005년
권수 : 총20권



참조 링크

쿄시로2030 : 위키피디어 : 일본어 : http://ja.wikipedia.org/wiki/%E7%8B%82%E5%9B%9B%E9%83%8E2030
쿄시로2030 : 집영사 홈페이지 : 일본어 : http://sj.shueisha.co.jp/contents/kyoshiro/
토쿠히로 마사야 : 위키피디어 : 일본어 : http://ja.wikipedia.org/wiki/%E5%BE%B3%E5%BC%98%E6%AD%A3%E4%B9%9F



내 별점 : ****



별점 설명

작성일: 2007-04-14
작성자: 임준형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만화 중의 하나다.

장르는 일단 SF인데
첨단과학의 묘사에 치중하는 하드SF라기 보다는
조지 오웰의 『1984년』(1948) 이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 처럼
미래에 인류가 갖게될지 모를 정치체제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정치 SF에 가깝다.

이 만화가 대상으로 하고 있는  독자는 "완전 성인"으로
이 만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폭력과 섹스는 하드 코어의 수준이다.
주인공 쿄시로가 일본도를 휘두를 때마다
뇌수와 내장이 터져나와 엉망진창이 된 시체가 산처럼 쌓이며
만화에서 묘사되는 섹스 역시 다른 어떤 하드코어 포르노에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음탕하고 노골적이다.

(그런데 그림체가 과히 아름답지 못해서
만화에서 아무리 섹스가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와도
흥분된다기 보다는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전술한 "하드코어"한 섹스와 폭력 때문에
이 만화의 본질을 놓치면 안된다.
이 만화는 "아주 뛰어난" SF만화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에서 묘사되는 섹스와 폭력은
그 자체로 만화에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을 부여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만화에 흥미를 더하기 위한 "당의정" 역할을 하고 있을 뿐
만화의 진수는 다른 곳에 있다)

일단 이 만화는 굉장히 지적(知的)이다.
(이 작품은 "하드코어" 섹스 폭력이 난무하는 만화라도 충분히 지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후기에도 가끔씩 밝히는 바에 따르면
작가는 상당한 수준의 독서가이며
(여가시간에는 거의 책을 읽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듯 만화에는 온갖 아카데믹한 요소들이 산재하고 있다.
ㅡ 플라톤, 소크라테스 같은 고대의 철학자들로부터
존 듀이나 롤즈 같은 현대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철학ㆍ사상 이론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또 그 인용의 맥락과 수준을 보면 앵무새처럼 어설프게 이론을 따라 읊는 것이 아닌
작가가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낸 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만화는 지금까지 인류가 가져왔던,
그리고 또 앞으로 인류가 갖게 될지 모를 여러 정치체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선 만화가 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작가가 2030년의 일본의 미래의 모습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나치가 만약 아직까지 현존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군사독재와 우생학이 지배하는 극단적 전체주의 사회"이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독재자 역시 히틀러와 똑같은 외모를 지닌 니조 노리마사라는 남자다)
군사 정부의 지하요새에 갇혀있는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단신으로 일본 정부에 반기를 들고
피바다를 도처에 뿌리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주인공 쿄시로가
비록 일본 제국군복을 입고 있고 일본도를 휘두르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만화의 이러한 설정 ㅡ 군대와 우생학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끔찍한 모습 ㅡ 에서
작가가 일본 제국주의를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우수한 인류와 열등한 인류는 신체조건에서 부터 엄청난 격차를 가지게 되었으며
ㅡ 그렇다, 허버트 조지 웰즈가 『타임머신』(1895)에서 예견한 사회와 비슷한 모습이다 ㅡ
열등한 인류는 남녀로 분리되어 집단농장에 갇혀 강제노동을 하며 
자손을 만들지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어 있다.

게다가 이 만화는 나치가 숭상했던 "이념"인 "우생학"을
아예 국가의 주요 정강으로 채택한 "게놈당"이라는 정당이 지배자로 등장하고
(게다가 그 정당의 주요인물들은 모두 군인들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유전정보를 관리하며
"국가반역병"이라는 허구의 유전질병을 내세워 
반대자들을 숙청하며 그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만화는 니조 노리마사(게놈당 당수)의 아들인 히카루가 만들어낸
"생산수단을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산주의적 소공동체 사회"의 모습 또한 보여주고
그러한 정치공동체의 양태와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찰하며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의 조건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탐구하는 등
만화에서 적지않은 정치철학ㆍ사회철학적 주제들을 제기하고 논의해 나간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를 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서술한 이 만화의 정치SF적 요소들은  
사실 앞서 언급한 SF소설들, 그리고 다른 수많은 SF작품들에서 
이미 충분히 고찰된 주제들이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그러한 주제들을 이 정도의 장편만화에서 이 정도로 치열하게 그려낸 것은
이 만화가 처음이며
또 그런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단 1초의 지루할 틈도 주지않고
흥미와 박진감이 넘쳐나도록 그려낸 이 만화의 솜씨는
이 만화를 최고의 SF만화들 중 하나의 자리에 올려놓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만화는 심지어 엔딩에 있어서까지 성숙하다.
아내인 유리카를 구해내기 위해 
첨단의 테크놀로지와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장된  
게놈당의 지하 요새에 침투한 쿄시로는
유리카만을 무사히 구해내고 요새를 탈출한다.
보통의 미성숙한 만화였다면 아마도 주인공이 요새를 박살내고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게 된다는 엔딩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개인의 힘의 한계를 분명히 자각하고
개인이 나라를 무너뜨린다는 황당한 (그러나 소년만화에서는 당연한) 엔딩을 지양하며
단지 서로 사랑하는 주인공 두 사람이 시대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신념대로 살아갈 것이라는
가능성만을 남긴채로 만화를 끝맺는다.
(이러한 작가의 정치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이론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성급하고 미성숙한 결론이 아닌 충분한 고민과 통찰을 거친 성숙한 결론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이 만화의 별점은 별 네 개(만점)이다.


(fin)











덧글

  • 사랑다솜아빠 2016/03/19 11:54 #

    얼마전에 우연하게 쿄시로2030을 완독했습니다.
    한동안 그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였지만, 정말 제 인생에 한 획을 그은 명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네이버에서 쿄시로2030에 대한 여러 리뷰를 둘러보았는데,
    imjohnny님의 리뷰가 가장 여운이 남네요.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