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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 英美 영화





데이비드 린치,<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



별점 설명

작성일: 2008-07-07
작성자: imjohnny


원래 혼자서 영화볼 때 풀타임으로 집중력을 유지하는 걸 힘들어 해서
중간에 딴 짓을 많이 하는데
이 영화는 풀타임으로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평생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슬프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될 거다.

19세기에 영국에서 실재했던 사람이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습 중 가장 끔찍한 기형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엘리펀트맨은,
누구나 그를 보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추(醜)한 인간이다.

추(醜0란 무엇인가?
우리와 다르게 생겼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그 "다를" 뿐인 그를
인간들은 증오하고 조롱하고 괴롭히고 굶기고 구타하고
서커스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경멸",
그리고 내가 느끼게 되는 "인간에 대한 경멸"에 전율했다.
처음에 말도 잘 하지 못하던 그가,
실은 말을 하고 성경을 읽으며
'시편'의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암송하는 것을 좋아하는,
다른 인간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점이 점점 밝혀지면서,
그럼에도 그를 여전히 조롱과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존재에 대해서 느껴지는 괴로움은 커져만 갔다.

'이레이저 헤드'에서 보여주었던 기괴함의 세계를
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엘리펀트맨에게로 끌어와서 압축시켰다.
그의 기괴함의 세계와 보통 인간의 세계가 만나자
깨질듯한 마찰음의 비명이 발생한다.

그는 그의 "세계"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을 보여주며
"인간"을 묻는다.
엘리펀트맨을 동정하고 사랑하는 인간들을 보여주고
엘리펀트맨을 혐오하고 괴롭히는, 돈벌이로 이용하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 안에는 그 둘 다가 있다.

엘리펀트맨을 서커스 단장에게서 구출해와서 유명해진
의사 프레데릭(안소니 홉킨스 분)조차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ㅡ '나는 그 둘 중 어느 쪽인가.'

자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짐승 취급하며 가두고 굶기고 구타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가 가졌을 심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사람들이 그에게 주는 극히 사소한 친절에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괴로웠다.
그는 얼마나 고통만을 받아왔으면 그런 사소한 친절에 눈물을 흘리는가.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계속 그를 혐오하고 조롱하고 괴롭힌다.

그는 계속 고통을 받다가
보통 사람처럼 누워서 자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는 병 때문에 누워서 자면 질식사하기 때문에 원래 앉아서 잤다)
누워서 자는 것을 택하고,
죽는다.

그에게 "보통" 사람처럼 된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보통이라는 것은 무엇이고 다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는 왜 평생동안 고통을 받아야했는가.
그는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에 기쁨의 눈물을 흘려보기도 하지만
그를 동정한 한 오페라 가수의 호의로
극장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사소한 행복을 경험한 후
"보통"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자보고 싶다는 사소한 소망을 이루며
죽음을 택한다.

눈 앞에서 수천명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쟁영화보다도,
이 영화가 나를 훨씬 더 괴롭혔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고통 중 하나인
어쩌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 수도 있는 다름과 차별로 인한 고통에 대해
영화는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fin)







덧글

  • 사발대사 2008/07/07 19:11 #

    마지막 장면의 음악과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ㅁ;
  • imjohnny 2008/07/08 15:34 #

    사발대사 / 동감합니다.
  • fatman 2008/07/08 19:16 #

    반면에 저는 이 작품이 딱히 와닿지 않습니다. [에일리언]에서 에일리언의 첫 희생자였던 존 허트가 그 엄청난 분장에도 불구하고 선사한 연기는 좋았고,(그 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누가 제이크 라모타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흑백촬영을 통해 선사하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지요. 하지만 그리 인상깊지 않았고 데이빗 린치의 최고 작품이 아니라고 전 봅니다. [나의 왼발]에 정말 감동했는데 이 영화는 그냥 잘 만든 시대극 본 기분만 들었습니다.

    영화 당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로저 이버트의 평
    http://rogerebert.suntimes.com/apps/pbcs.dll/article?AID=/19800101/REVIEWS/1010313/1023



  • imjohnny 2008/07/09 10:00 #


    fatman / 제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다 보지 못해서 이게 그의 최고 작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버트는 이 작품에서 무얼 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네요.
    작가는 영화에서 이미 다 보여주었는데 "무얼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투덜대고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
    이버트가 가끔씩 특정 영역에서 놀랄만큼 "얕은" 수준의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린치가 제공하는 주제의식들은 상당 부분 우리에게 직관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버트가 그 영역들에 대해서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이버트는 심지어 'Eraserhead'에 대한 리뷰도 쓰지 않았군요!
    데이비드 린치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
    다른 보수적인 평론가인 레너드 말틴도 이 영화에 ***1/2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醜함"과 "다름", "차별", "인간의 존엄" 등 인간事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의식들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전제하면 일단 평론가마다 평가 수준이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것이 설명된다고 봅니다.
    이 차이는 의외로 정말 극복하기 힘든 영역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가 그 주제의식들을 맞추어 작품으로 완성하는데에 있어서 크게 성공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단 일반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이 영화의 완성도의 근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구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기괴하고 낯선 영화에 관객들이 그 정도로 반응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다양한 효과적인 장치들을 서서히 차근차근 쌓아올려가 만들어낸 전체의 정밀한 짜임새,
    그리고 직관으로 다가온 감동의 정도 등이
    이 영화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남을 증명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저 자신의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깊은 공감으로 인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보다 높게 평가하고자 하는 경향이 없다고 말 못하겠습니다만
    뭐 누구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건 어쩔 수 없는 영역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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