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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국 해적판 만화 출판 역사 (두고보자, 2001) 스크랩 (일반)

한국 해적판 만화 출판 역사

출처 : 만화웹진 두고보자 (http://www.dugoboza.net/bbs/ezboard.cgi?db=a_darkcomic)
글 : capcold (김낙호)
일자 : 2001-12-29




(1) 해적이라는 '장르' 


...먼 옛날, 아니 그리 오래지도 않은 옛날. '허리케인' 죠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에서 '드래곤볼' 단행본이 일본 본토보다 빨리 출시되었으며, '용소야' 시리즈의 만화가 '성운아'는 만화가를 지망하는 뭇 소년들의 우상이었다. 일본만화가 정식으로 수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아직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는) 영미권 성인물들이 소개되기 이전부터 이미 바벨 2세는 라이파이나 각시탈과 동등한 위치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받아왔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만화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절대로 완전히 합법적일 수도, '도덕적'일 수도 없다. '해적판'이라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만화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기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좋든 싫든 '해적판'이라는 '미운 오리새끼'를 애써 숨겨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과정이다. 

해적판. 그것이 이 기획기사의 중심화두다. 아무리 부끄럽거나 천박하게 느껴지더라도, 한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만화가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고자 하면서 이 화두를 비켜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군사정권 시대 30여년을 관통하는 강력하고도 근본적인 문화 탄압의 칼바람 속에서 만화가 살아남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만화계에서 하나의 중요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획코너에서는 앞으로 여러회에 걸쳐서 한국만화계에서 해적판이 차지하는 위치의 궤적을 짚어볼 것이다. 이 탐색은 '아하, 그런 것이 그때 있었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음, 불량불법만화 이야기를 가지고 엄청나게 우려먹는군'하는 마음으로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우리네들이 직접 접해온 이야기들이다. 왜냐하면, 우리시대의 만화광들은 일본원서만을 독파하며 내공을 쌓지도 않았고, 또 토종 우량 한국만화만을 보면서 크지도 않았으니까. '鐵拳 チンミ'를 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실제로 접한 것은 '쿵후소년 용소야'였을 뿐이다. 

...자, 그럼 이제 불량 불법의 세계로 들어가보도록 하자. 


<일진회. 만화탄압. 블루스>


해적판이란 무엇인가.

우선 처음에 해적판이 과연 어떤 것들을 지칭하는 것인지 범위를 먼저 정해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합법의 좁은 세계와는 달리 불법의 세계는 '넓고도 광대하다'.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탈법을 저지를 수 있다! 여느 손재주 좋은 고등학생이 연습장에 유명 만화 일러스트를 그려주고, 그 대가로 친구들에게 한끼 식사, 볼펜, 아니면 아에 소량의 현금을 받는 흔하디 흔한 경우도 엄밀하게는 저작권법 침해고, 명백한 불법이니까. 

해적판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위에서 말한 '불법', 정확하게는 '저작권 침해'다. 해적판에는 항상 '원작'이 존재한다. 해적판은 원작의 모방이지만, 그것이 원저작자 및 출판권자 등 저작권 주체들과의 합의 없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리메이크와는 구별된다. 그 모방은 책을 불법 대량 복제해서 유통시키는 기계적인 방식에서부터, 원작을 고스란히 배껴서 다시 그리는 '창조적인' 작업까지 다양하다. 실제로 7-80년대 국내에 유통된 여러 해적판은 후자의 방식이 많았고, '에이스를 노려라', '도전자 허리케인' 같은 의외의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다(이 부분은 후에 저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다음으로 해적판을 규정하는 중요한 조건은, 그 모방이 전체적이고 상업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특정 원작의 독특한 캐릭터 혹은 메카닉을 무단으로 도용하여 사용하는 행위도 저작권 침해이지만, 패러디, 카메오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사용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범위를 한정시키는 것이다. 여러 동인지의 경우 인기작의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외전이나 패러디 등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들을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해적판들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또한 외국의 메카닉, 인기 캐릭터들이 한국만화에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할 경우 어디까지를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어디서부터를 '모방'(혹은, 표절)으로 간주해야 할 지 기준이 애매하다. 예를 들어서 고유성 作 '로보트 킹'의 주연 메카닉인 로봇 킹은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자이언트 로보'의 GR-2호 디자인을 차용한 것이 명백하지만, 그 디자인의 성격이나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다르며, 작품 자체의 드라마 전개도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90년대초에 유행한 수많은 '드래곤볼2'과 '란마 1/3' 시리즈 같은 대체 판본(원작의 연재 진도보다 이후의 이야기를 임.의.로 그려서 신속하게 유통시키는 해적판)들은 원작에 없는 독창적인 전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해적판의 범주에 넣어주어야 마땅하다. 그것들은 패러디, 만화문화 공유 같은 동인으로서의 목적이 아니라, 원작의 인기를 등에 업고 원작의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작 유통 수용의 과정에서 해적판을 정의하기는 더 명쾌하다. 우선, 작가 스스로가 이것은 '배꼈다'라고 인정한다면 (유감스럽게도, 인정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굴절된 만화사 속에서, 현재 중견 이상의 작가군 가운데 한번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해적판 제작에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해적판으로 간주할 수 있다. 유통의 측면에서는, 첫째 불법적인 유통경로를 거치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유행한 '500원 판본'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500원 판본은 일반적인 유통경로인 만화 도매상, 대본소 등을 일절 거치지 않고 철저한 현금거래로 각종 문방구와 소매 서점들을 일대일로 돌면서 직거래했다. '그쪽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만화책을 봉고차에 가득 실어서 매우 불규칙하고 비정기적으로 서점에 잠깐 나타났다가 거래를 마치고 곧바로 사라진다(당연히 반품이나 재판 주문 같은 행위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더욱 많은 해적판은 '정상적인' 심의절차를 통과하고 심의필 도장이 찍힌 채로 합법적으로 유통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유통은 반드시 불법적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꼬리를 잡히지 않는 것'일 뿐이다.

요약해서, '해적판'이라는 것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1) 원작을 완전히 복사하거나('불법복제') 2)전반적으로 배껴서('도작', 혹은 '배껴그리기'), 또는 3) 원작으로 속이려는 목적으로 자체적으로 제작한 ('대체판본') 불법/합법적으로 유통시킨 불법 판본을 칭한다는 말이다. 어째서 이런 해적판들이 한국 만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는 천천히 설명할 몫이다. 


<불법출판과 '심의필'>


왜 해적판을 만드는가.

해적판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 상품 수입 규제, 검열, 저작권에 따른 비용 소요 등 여러 가지 골치 아픈 문제들을 고스란히 비켜가면서 상품성 높은 작품들을 시장에 유포, 손쉽게 만화 시장에서 '한몫 잡는' 것이다. 불법 음반, 불법 (활자) 서적 시장 등과 달리, 아직 국내 만화시장은 자율성으로 일구어진 정리된 내부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서 (아직도 몇몇 시민단체와 국가기관이 연합하여 '불량만화' 소동을 일으켜서 여러 출판사들을 눈 깜박할 순간에 고사시켜버릴 수 있지 않은가!),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더욱이 6-70년대 이래로 일본만화가 한국만화에 비하여 질적/양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했고 그 일본만화가 최근에서야 정식으로 개방되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여러 상품성 있는 일본만화들이 도입될 충분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바탕에는 박정희 정권 당시의 문화 전반에 대한, 그 중에서도 특히 만화에 대한 서슬퍼런 탄압(전쟁의 폐허 위라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조건 속에서 당시의 검열과 탄압은 한국만화가 서 있는 위치를 출발선상보다도 훨씬 뒤로 밀어 넣는 작용을 했다)과 일반의 인식부족, 그리고 일본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성이 놓여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야 모든 문화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만화에서 해적판이 더욱 기세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만화의 제작/유통과정이 그만큼 취약했기(하기) 때문이다. 유통망이 취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되더라도 자정작용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고, 상품성이 있을 경우 충분히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6-70년대부터 시작된 독과점적 공장형 대본소 체제에서는 독창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창작물이 나오기가 워낙 힘들었고(그렇게도 대단히 척박한 환경속에서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 수 있었던 몇몇 작가들은 그래서 더욱 그 가치가 빛난다), 보다 검증된 인기작을 수입해오는 것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이 더 좋다고 판단되는 것이 당연한 절차였다. 사실상 워낙 만화가 작품이라기보다 소비재로서 인식되던 당시에는 '뭐든지 그려서 공급하기만 된다'(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뭐든지 그려서 공급해야만 겨우 작가와 문하생들이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지만, 점점 양질의 작품을 찾는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할 때에는 여지없이 일본만화를 불법적으로라도 들여오는 것이었다. 500원 판본들 또한 만화를 직접 구매해서 본다는 개념이 희박하던 유통망의 허점을 파고 들어온 것이었고, 비용 절감은 인쇄 품질, 번역 품질,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전적인 무시를 통해서 이루어 상당한 시장 성과를 이루었다(물론 공식적인 집계자료는 없다... 다만 점차 시장의 폭이 넓어지고 참여 업체가 많아졌다는 사료를 통해서 추론하는 부분이다). 

해적판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소비자(독자)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진행이 될 수 없다. 첫째로는 제작 및 유통환경의 개선 없이 독자의 눈높이가 올라갈 경우, 제작/유통을 개혁하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독자들의 눈에 차는 것을 구해주는 것이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건전하고 합법적인 수입의 형태가 아닌 해적판이라는 왜곡된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비현실적이고 시대역행적인 민/관의 검열제도의 몫이 크지만 말이다. 더욱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보다 많은 양을 단번에 소비하려는 (소위, 만화는 '쌓아놓고 봐야 한다'는 사고방식) 국내 독자들의 성향은 여러 해적판 업자들에게 '드래곤볼' 대체 판본과 가짜 단행본(잡지 연재분을 팩스로 공수해서 몇 회 단위로 제본, 출판하는 방법)을 양산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만화읽기 성향 자체가 공장형 대본소 체제의 만화에 익숙해져 있어서라는 측면도 있지만, 한번에 몰려갔다가 이내 관심을 꺼버리는 전반적인 '냄비성' 습성의 발로이기도 하다. 즉, '유행'을 타면 엄청나게 관심 수요가 불어났다가, 조금만 고삐가 늦추어지면 바로 풀어져버리는 관심패턴이, '연재'라는 만화 제작 형식과 맞물려 들어갈 때 해적판이라는 갓길로 새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첫 번째 줄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해적판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은 투자와 비교적 적은 위험부담만을 가지고도 쉽게 장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화 전반을 모두 '불량'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회상 속에서는, 진짜 불량 불법이 구분이 좀처럼 가지 않기 때문에 (특히 만화의 ㅁ자도 모르면서 만화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일부 출판업자들과 행정관료, 검열관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쩌다가 꼬리를 잡히더라도 그 파장이 불량 불법에 대한 처벌이라기보다 만화계 전반에 대한 인식악화로 이어져버린다. 그렇게 소동이 커지고 있을 때 슬그머니 은둔해버리면 그만이다. 실제로 이것은 가깝게는 97년의 '일진회' 사태 당시 그대로 재현되었던 시나리오다.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손쉬운 돈벌이에 위험부담도 상대적으로 적다. 불법을 저지르기 위한 최상의 조건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것이 바로 해적판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2) 전후 해적 여명기 


1. 6-70년대

'합법'이라는 테두리, 개인 창작에 의한 지적 재산권이라는 개념이 있는 사회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그 반대급부인 표절과 불법, 지하유통은 존재한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다. 하지만 50년대 이전, 대부분의 만화가 단칸 풍자 만평 위주였던 시기에 대해서 한국의 해적판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영양가있는 작업이 되기는 힘들다. 해방 직후에 주로 들어온 외국만화는 (당연히도) 미국만화였으나, 미군부대 주변을 통해서 유입된 미국식 슈퍼영웅물들은 문화 격차와 정서적 차이가 커서 한국어로 번역/도작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곧바로 터진 한국전쟁의 아수라장은 만화의 성장 자체를 잠시 유예시키기에 충분했다. 

물론 미국만화의 그림체와 연출기법은 이 당시 여러 만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김종래 화백등의 극화체는 물론, 산호 화백의 라이파이 등은 '망가'의 영향보다는 미국의 만화연출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하지만 50년대 중반의 일본에서는 데즈카 오사무가 서서히 망가의 문법을 확립해나가던 시기고, 그 영향은 조만간 한국에도 도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히트'를 친 해적판이 탄생한다. 서봉재의 '밀림의 왕자'라는 이 작품은, 일본망가 '정글소년 케니아'를 도용한 해적판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의 만화'책' 포맷은 8-16쪽의 단행본이었다(이러한 포맷은 역시 미국만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적으로 독자를 압도할 수 있는 100페이지 내외의 혁신적인 포맷으로 등장한 '밀림의 왕자'는 강력한 붐을 일으켰다.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본격적인 소년모험물이자 (데즈카 오사무식의) 영화적 장치들을 부분적으로 도입해서 정서적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의 주요 해적판 기법은, 바로 '배껴그리기' 기법이었다. 이는 원작을 그대로 한국에서 만화직능인이 다시 그려서 원고를 작성하는 기법으로, 이후 오랜 기간동안 해적판의 대표적인 기법이 되었다. 배껴그리기 기법의 효용은 두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은폐다. 여하튼 해적작가가 '직접 그림 작품'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심의의 문제다. 단순히 폭력과 성의 수위를 조절하여 자정작용을 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80년대까지 심의는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전체가 사전심의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70년대까지는 아예 만화 원고를 직접 심의기관에 제출, 검열을 받아야만 했다(만화원고에 직접 빨간펜으로 수정사항을 지시하는 등, 검열기관의 몰이해와 횡포는 상상을 초월했다). 즉, 해적판이라도 '원고'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배껴그리기 기법으로밖에 해결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밀림의 왕자' 히트 이후, 업자들은 만화의 시장성을 인식하고 공장제 제작 시스템을 도입, '여하튼 많이 찍어내고 보자'는 식의 양적 압도를 꾀한다. 이런 와중에서 '작가적 창작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해적판리 각광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6-7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에서는 데스카 오사무를 위시하여 치바 데츠야(스포츠물에 있어서 치바데츠야의 영향을 받지 않은 당시의 작가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와 요코야마 미츠테루 등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그들의 만화는 간결한 그림체, 몰입도 높은 스토리, 완성도 있는 장편 연출 등 국내 해적판 업자를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만화의 영향을 받은 이전의 극화체 원로 작가들과는 단절된, 새로운 만화제작 시스템과 일본망가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작가군이 등장했고, 절대적 권력을 가진 출판업자들은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많은 해적판 생산을 강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해적판은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위의 3대 일본작가들의 해적판의 인기는 절대적이어서, 심지어 데즈카 오사무의 '꼬리인간'이라는 작품의 해적판이 두 개의 출판사에서 서로 다른 두 작가의 이름으로 동시에 출간된 경우도 있었다. 이후 80년대말에 다시 나타나게 될, '일본 본토보다도 단행본이 먼저 나오는' (즉, 잡지 연재분을 그대로 입수, 먼저 단행본으로 한국에서 출간하는) 형산들도 이때 이미 시작되었다.

모방은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창작을 낳는 경우도 생긴다. 배껴그리기 기법은 필연적으로 그림체와 연출에 있어서 작품 전체에 걸친 다소의 변화를 동반하며, 일부 만화들은 한국의 해적판에서 전혀 다른 그림체와 연출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가끔 생겨났다. L작가가(위에서 언급헸다시피, 이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은 공장제 시스템과 해적판에 대한 강요를 경험하면서 만화를 그렸고, 현재의 중견 및 원로 작가들은 거의 모두 이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장제로 그려낸 '허리케인 죠'(원작 치바데츠야의 '내일의 죠')의 경우는, 둥글둥글하고 땅딸한 캐릭터들으로 된 원작을 오히려 길고 거친 선의 캐릭터로 변모시켰다. 우연히도, 원작이 애니메이션화되었을 때의 그림체는 한국 해적판의 그것에 가까웠다(원작 만화 자체도 후반으로 가면서 이러한 그림체로 가게 된다). 심지어 몇몇 일본 순정만화의 걸작 중에는, 한국의 해적판 그림체를 참고해서 오히려 원작에 다시 반영했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해적판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물증을 확보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작가 스스로 인정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하지만 '밀림의 왕자; 등으로 촉발된 6-70년대의 해적판 붐의 진정한 파급력은, 만화유통시장의 변화다. 하나의 '히트'는, 충분한 충격을 줄 수 있으면 하나의 '경향'으로 탈바꿈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시대에서 100페이지 내외의 두꺼운 단행본의 발간은 필연적으로 제작비의 증가요인이었으며, 수요는 늘되 그 수요는 구매력이 없는 수요였다. 따라서 적은 구매력으로도 충분한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 만화인구를 충족시키는 방안으로서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대본소'라는 공간이다. 

대본소는 양에 대한 집착과 공장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후 한국만화계의 가장 주도적인 유통방식으로 자리잡게 되는 체계다. 당시, 언론사에 자리를 잡은 일부 시사만화가를 제외하고는 만화가들이 대부분 대본소 단행본이 유일한 독자와의 소통창구였다. 하지만 대본소라는 유통망은 중앙집중식 경영과 독점이 가능했기 때문에, 만화가는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유통업자/출판업자의 절대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5-60년대에 싹을 피우려고 했던 문학과 서구만화등에 토대를 둔 작가주의적 작품군은 이러한 대본소 체제 속에서 이내 사그러든다(물론 검열당국과 만화에 대한 일반의 몰이해도 큰 몫을 했다). 거대 출판사의 '끼워팔기'가 발생했음은 물론이다(합동 출판사의 '신촌대통령'은 이 당시를 회고하는 모든 관계자들에게 악몽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는 물론 검증된 히트작과 장르만을 재생산하도록 하여 작품의 내용적 폭을 축소시키며, 만화의 유통체계가 '판매'가 아닌 '대여'로 향후 수십년간 굳어버려서 만화 시장의 확대를 비정상적으로 구속하는 폐단을 낳았다. 한국에서 해적판은 그 본연의 모습인 언더그라운드 지하시장이 아닌, 주류시장에서 화려한 데뷔를 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저작권법, 지적 재산권 등의 작가의 권리, 창작에 대한 자존심과 모방에 대한 수치 등 최소한의 윤리적 요소들,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를 하나의 예술로서, 미디어로서 볼 수 있는 정당한 인식의 여지를 가로막음으로서 한국만화의 체계적인 발전에 한계점을 그어놓았다. 

<만화좌판>

<'서봉재의' 밀림의 왕자>

<철완아톰, 우주소년 삐삐>


2. 클로버 문고

이후 대본소는 상당부분 해적판으로 계속해서 물들어있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의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 등 여러 원로작가들의 영향아래 혁혁한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공장제 시스템에서 일본망가를 도작하도록 강요당하는 중견 작가들이 미국만화의 영향을 받은 원로작가들과 세대적 단절을 이루고, 왜곡된 유통구조 속에서 살인적인 노동량 속에서 작가적 역량을 고갈당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새롭고 창조적인 활로는 일본에서 건너왔고, '일본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박정희 치하에서 극대화되었던 그 시절 역설적으로 해적 만화는 필수적이었다. 이미 해적판은 만화가 독재치하에서 현실참여를 거세당한 상황속에서 한국만화의 장르적 흐름과 경향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어 있었고, 에스퍼물을 이끈 '바벨 2세'라든지, 로봇물을 끌고 온 '마징가Z'라든지, 순정 붐을 만들어낸 '캔디 캔디' 등이 80년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열심히 '베껴그리기' 기법으로 다소의 '번안'을 거쳐서 국내 대본소에 소개되고, 이내 국내에서 하나의 '장르'를 창조해냈다. 

즉, 이미 만화문화 일반에 해적판에 대한 의존은 스며들어있었고, 그것은 대본소라는 하나의 체제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당시 직접 구매의 활로를 뚫고, 구매용 단행본의 길을 개척해낸 전설적인 만화 단행본 포맷인 '새소년 클로버 문고'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70년대 후반에 들어서 새소년, 소년중앙 등 만화를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는 잡지들이 등장하면서, 대본소의 만화에 대한 독점적인 영향력은 다소나마 감소되고 있었다(물론 여전히 생계를 위해서는 대본소를 놓칠 수 없는 것이 만화가들의 사정이었다).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통로가 새로이 생겨났고(이후 80년대 들어서 성인층을 포괄하는 일반만화를 연재하는 '만화광장' 등의 전문 잡지들이 생겨날 때 까지는 유감스럽게도 어린이층에 한정되어 있었다), 단행본 시리즈 클로버 문고를 통해서 다양한 장르들이 고루 발표되었다. 클로버 문고에는 현재의 경향과는 달리, 문학작품의 만화화, 위인전기 등의 학습만화와, '요철발명왕', '철인 캉타우' 등의 보통 만화가 복합되어 있었다. 소년소녀 잡지들의 등장과, 클로버 문고에서 발간된 300권 이상의 만화는 대본소라는 독점적 유통체제 속에서 신음하던 만화가들에게는 새로운 활로였음이 분명한 것은 만화 자체의 질적 수준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하지만 클로버 문고는 학습만화와 보통만화만이 자연스럽게 섞여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창작물과 해적판도 자연스럽게 섞여있었다. 오상환 作으로 되어있는 '우주여객선' 시리즈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이고, '은하함대 지구호'가 '우주전함 야마토'임은 숨기려고 한다고 해서 숨겨질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학습만화를 제외하면, 3분의 1 가량은 해적판으로 추정된다. 즉, 아직 해적판과 창작물이 제작과 유통의 차원에서 분리되어있지 않던 시절, 클로버 문고 등 단행본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들은 그와 동시에 해적판을 대본소가 아닌 가정으로까지 보급시킨 '원죄'도 공유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런 와중에서 일본식 만화문법은 자연스럽게 한국만화의 교과서가 되었고, 독자들도 이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여졌다. 이것들이 의식적인 차원이 아닌, '해적판'이라는 불법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작가와 독자 양측의 면역력이 약해진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과오들의 결과는 이후 90년대 초, 일본만화가 단계적으로 직접 라이센싱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그 처절한 결과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3) 80년대와 콩콩 


1. 만화가의 원죄 

"그러나, 원판을 보고 나서, 그때서야 일본의 학생운동 세력들이 왜 '내일의 죠'를 들고 다녔는지 알게 됐고, 원판을 보고서야 내일의 조가 단순한 헝그리 복서의 영웅담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일의 죠'는 한 잡지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일본 전후만화의 '금자탑'이었던 것이다." 

- 최훈, [단상] 속고만 산 386들을 위하여 (PEOPLE 게시판 에서)

야부키 죠, 그는 한국의 70년대를 '백만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물론 워낙 여러 판본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이름이었던 판본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죠'와 동일인물이라고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잡지연재 당시 초반의 거친 사회환경과 불우한 성장기 시절이 거세당했던 한국의 '죠' 백만리는, 성공으로 향하는, 도대체 왜 헝그리인지 모를 헝그리 복서였다. 심지어 그 비장한 엔딩마저도 '주인공은 승리한다'라는 철저한 법칙으로 점철, 챔피언이 되는 것으로 끝냈다. 

7-80년대까지도, 일본 해적판과 창작물이 별다른 구분없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 이어졌고,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서 출판사가 강요하는 '검증된 히트작'을 제작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리고 그 강요에 이겨낼 만한 작가적 자존심과 강력한 이권보호단체가 생기지 않은(사실, 현재라고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상황에서 여러 독특한 해적판들이 양산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이전에서 언급했듯이, 당시의 만화검열제도 방식과 맞물려 해적판은 단순한 인쇄기만을 사용하는 복제가 아닌, '만화가'를 필요로 하는 사업이었고, 작가들은 이에 힘없이 동원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현재 중견작가가 되어있는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하나의 '원죄'로 영원히 남게 되어있는 부분이고, 또한 대다수의 경우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은채로 조용히 잊혀지기를 바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이 자료보존이 매우 부실한 한국만화계의 현실에서 당시의 증거자료들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묻혀지기 쉽다. 다만 독자들의 기억에 의존한 '증언'들과 '혐의'만이 있을 뿐이다(중견작가 L 씨가 백만리 허리케인죠의 해적판 작가였다든지, K 씨의 모 작품이 일본작품 '가라데 바카 일대기'를 상당부분 도용했다든지 하는 식 말이다). 물론 이원복씨의 '사관이와 병호의 대모험'이 치바데츠야의 작품과 캐릭터를 해적질한 경우처럼 작가 자신이 자의반타의반 '양심선언'을 한 경우도 있다. 

작가의 손을 거친다는 측면에서, 작품들은 일종의 '재처리'와 '변형'을 거치게 된다. 그림체가 상당부분 미묘하게 바뀌는 것은 기본이고, 스토리와 인물설정 또한 조금씩, 혹은 많이 변하게 된다. 이미 한국판의 '죠'는 연재 초반부터 거친 선과 가늘고 긴 인물묘사를 사용하고 있었으며(실제로 치바데츠야의 원판은 초반에는 둥글고 짧은 인체묘사를 하다가, 점차 거칠고 긴 선으로 간다), 몇몇 순정만화의 경우는 오히려 일본작가가 한국 해적판의 그림체를 보고 참조하여 원작에 반영을 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설정에서는, 우선 기본적으로 모든 일본적 상황들이 한국 상황으로 억지로 번안을 당해야 했다. 기모노가 한복으로 둔갑하고, 일본명절이 한국명절로 둔갑하는 일은 부지기수며, 스포츠물의 경우 한일전은 생략되거나, 아예 제 3국의 설정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변형은 스토리 자체에 대한 것이었고, 기본적으로 비성인 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모든 스토리들이 '영웅담/성공담', '해피엔딩', '애국애족'의 큰 틀안에 갖히도록 강요받았다. 어차피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져와서 '나름대로' (글 편집부, 그림 만화가) 조합해서 사용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저작권이니, 원작에 대한 훼손이니 하는 개념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 그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만화들을 폐기처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것은 마치 한글창제 이전의 모든 한자로 된 문학작품을 국문학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로보트 킹'의 디자인이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자이언트 로보'에 나오는 로봇을 가져온 것이라고 해서 작품 자체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고, 애초에 이당시의 대중적 만화를 논하면서 데즈카 오사무, 요코야마 미츠테루, 치바데츠야의 영향력을 무시하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 또한 캐릭터나 작품의 일부요소를 차용, 더 나은 조합을 만들어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상 모든 예술의 기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당시의 해적판 붐은 작품에 대한 작가적 욕심이나 사회적인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출판사의 잇속을 위해서 공장제로 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차용은 표절을 넘어서지 못하고, 변용은 원작훼손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들이 대다수로 귀결되었다. 작가의 개입이 배제된 채로 시스템만에 의해서 생산되는 공산품으로서의 만화를 고착시켰다는 점에서 이 시대의 이러한 관행들은 한국만화의 발전을 수십년 어치씩 퇴보시켰다. 그것은 비단 이 시대의 이야기만도 아니며, 단지 명백한 해적판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죠는 장렬하게 산화했으나, 백만리는 아니었다 >

<바벨 '치코' 2세>, 


2. 다이나믹 콩콩

80년대 중후반, 소년만화계를 주름잡던 최고의 히트만화가를 꼽아보라면 반드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두 이름이 바로 '성운아'와 '전성기'다. 그 두 '만화가'들은 매우 정력적인 활동력을 보였고, 짧은 시간내에 많은 양질의 소년만화를 만들어내기로 유명했다. 특히 작가로서 소화해내는 장르적 다양성도 대단하여, '쿤타맨' 같은 개그물에서부터 용소야 같은 무협물, 나인볼황제 용소야 등의 전문분야 만화도 거침없이 그려내고는 했다. 그들은 최고의 만화가에 대한 표상이었다 - 그 정체가 들키기 전까지는. 

다이나믹 콩콩 시리즈는, 기존의 여타 판매용 만화책 단행본과는 차별화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회색 톤 장정 위주의 클로버 문고나 소년소녀문고 등의 시리즈들과는 달리, 화려한 원색의 색동 띠를 슬리브에까지 적용, 대단히 키치적이면서도 눈에 잘 띠는 외관을 사용했다. 또한 이미 20여년 이상 이전에 '밀림의 왕자'가 그랬듯이, 기존 판본들보다 더 두꺼워지고 또한 해적판을 주력상품으로 내세웠다. 밀림의 왕자 당시의 상황과 콩콩코믹스 당시의 상황은 결코 같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정도의 대형히트를 기록한다. 단지 형식을 개편한 것 이외에도 판매망도 넓혀서, 문방구 및 일반 서점에서 만화책을 찾아내고 사는 것이 콩콩 시리즈와 함께 더욱 쉬워졌다. 물론 이러한 성공은 여러 비슷한 포맷을 지닌 다른 출판사들의 시장 참여를 유도했으며, 이러한 '원색 장정 판본'들은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졌다. 

80년대라는 시대상황은, 박정희 사망 이후 전두환의 '문화정책'에 힘입어 만화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과 검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갔으며, 합동 출판사 등 70년대의 맹주들이 (다행히도) 정리가 되어가고, 그럼에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세상사 속에서 오락거리로서의 만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던 때이다. 순정만화가 단순한 소녀연애물이 아닌 본격적으로 작품으로서 힘을 얻어가기 시작했으며(이러한 경향은 88년 마침내 '르네상스'창간으로 매우 중요한 결실을 맺는다), 보물섬, 만화광장 등 여러 중요한 잡지들이 창간되었다. 즉, 만화계는 양적, 질적으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70년대 말부터 TV 애니메이션 방영의 증가와 함께 심화된 만화수요층을 만들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이나믹 콩콩 등의 출판사들은 한쪽으로는 TV 애니메이션의 여러 잡학상식들을 묶어놓은 '대백과'류를 줄줄이 출간했으며, 다른쪽으로는 여러 소년취향의 일본만화들을 해적출판했다. 다이나믹 콩콩 류의 만화들은 이전의 '배껴그리기'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그림들을 그대로 복사하다시피 했다. 직접 복사와 트레이싱을 조화시켜서 제작된 해적판 시리즈는 탁월한 작품선정에 힘입어서 대단한 히트를 기록한다(심지어 '쿵후보이 친미'의 해적판인 '권법소년 용소야'의 경우는, 용호자, 호소자, 용수아 등 수많은 아류 해적판들 (같은 만화를 타 출판사에서 다시 해적판으로 내놓는 것)을 양산하여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세인트 세이야(성투사), 일격권(권법소년), 친미(용소야) 등 주로 작품선정의 기준은 남자 어린이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협/모험물들이었다 (순정만화 계열은 전반적으로 꾸준히 원래의 해적판 포맷을 유지해 온 것과는 대비되는 지점이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무명 만화가가 이름을 내걸고 하지를 않고, 아예 '성운아' '전성기' 등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서 그 이름 아래에서 여러 '공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림체, 스토리 변용에 있어서 작가적 개입이라는 것은 이전보다도 더더욱 불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명의 만화가가 하나의 주연 캐릭터를 여러 작품에 등장시키는 한국만화의 오랜 관행처럼 (이현세의 '오혜성' 등), 성운아의 이름을 내건 여러 만화에는 용소야가, 전성기에는 한주먹이 등장한다. 일본만화 '브레이크 샷' (해적판 제목 '나인볼 황제 용소야')같이 애초에 원작이 용소야와 같은 작가인 경우는 그나마 양호하지만, 많은 경우는 전혀 별개의 작품을 주인공 얼굴만 바꿔치기해서 억지로 '용소야/한주먹'化 시킨 경우가 태반이다. 독립된 작품보다 캐릭터 위주의 인식 심어주기 같은 작품 외적인 부분까지 해적판을 '한국화'시키려던 출판업자들의 노력이 감탄스럽기도, 개탄스럽기도 한 부분이다.

물론 콩콩류의 시리즈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창작품'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출판사에서 정해준 규칙에 따라서 모 일본만화의 모 캐릭터들만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고, 매우 쑥스러운 수준의 작품들이 양산되었다. 물론 당시의 주요 유행 아이템들을 반드시 소재로 넣는 것도 필수사항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태양권과 강시 라이온' 같이 작품 속에 드래곤볼 캐릭터들이 난무하고, 강시가 뛰어다니며, 무협이 등장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그리고 작가는 단순한 무명신인이 아니라, '로보트 킹' 등 선구적인 SF만화의 대가인 고유성이었다!). 

콩콩류의 만화들은 9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그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그중 일부 출판사는 현재는 정식 출판사로 탈바꿈, 라이센스 판본들을 수입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도대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에 해당된다. 해적판의 특성, '사라질 때는 흔적도 없이' 라는 규칙 그대로 말이다. 콩콩류의 만화들은 비대본소 단행본 위주의 소장용 출판 시장을 가늠했으며, 판매망을 문방구 등지까지 넓혀낸 첫 공신이라는 점에서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효과들은 철저한 출판사 위주의 기획, 해적판이라는 불법성의 한계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말았다. 또한 본격적으로 출간형태의 중심축을 창작물과 해적판의 혼합된 구도(클로버 문고 등)에서 해적판으로 (그리고 창작물도 해적판에 준해서 기획되는) 옮겨왔다. 이렇게 길들여진 독자들과 만화시장은 현재까지도 그 영향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법출판과 '심의필'> 


3. 구호 프러덕션과 하드보일드

대본소 시장도 물론 해적판에 있어서 잠잠했던 것은 아니다 - 아니, 한번도 잠잠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대본소용 해적판은 항상 꾸준히 나와왔고, 그것은 순정만화든, 비순정만화든 공평하게 이루어졌다. 이곳은 여전히 해적판과 창작물의 경계가 모호하게 흘러갔으며, 출판형태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대본소 계열에서도 '배껴그리기'가 아닌, 본격 복사 해적판들이 출시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구호 프로덕션'이었다. 소년 만화계열에서 콩콩류의 시리즈들이 무협/모험물들을 주력으로 삼았던 반면, 이들은 하드보일드, 혹은 그러한 류의 폭력성 짙은 작품들을 주로 다루었다. 그림에 대한 수정 및 번안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번역 및 인쇄질에 있어서 이후 나올 판본들까지 포괄하더라도 해적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번역/인쇄 품질을 자랑했다. 그중 가장 인기있었던 시리즈는 역시 '도시의 사냥꾼' 시리즈였다. 일본만화 '시티헌터'의 해적판인 이 작품이 주인공에게 부여한 '방의표'(원래: 사에바 료)라는 이름은 이후 여러 해적판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만큼 독자들의 뇌리에 박혔다. 이외에도 '크라잉 프리맨'을 비롯한 료이치 이케가미의 폭력물들이 인기 아이템이었으며, '리키오' 등의 하드고어 무협물들도 비교적 제한받지 않고 출간되었다. 대본소판 성인만화라는 포맷을 이용해서 심의 검열에 비교적 양호하게 맞선 경우였던 이 시리즈는 비교적 왜곡이 덜한 (거의 번안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본만화를 한국에 유입시키는 최적의 통로로 작용했다. 

이렇듯 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만화계는 각 층위마다 해적판 일본만화의 세례를 받으며, 시장의 거의 주류에 가까운 비율이 해적판으로 슬슬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제 때에 경쟁력을 확보하는데에 일정부분 성공한 순정만화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영역은 이후 급격하게 한국만화의 체력이 약화되어 90년대의 풍파를 맞이하게 된다. 



(4) 500원의 시대 


1. 드래곤볼 효과와 500원의 시대

"500원입니다! 구구 크러스터~" 

1989년, 90년 당시의 500원이라는 화폐가치는, 모 제과업체의 고급화 전략의 일환인 아이스크림 한 개이자, 오락실 오락 10판, 혹은 주간 소년만화지 3분의 1 이었다. 500원이라는 '군것질로 낭비하기에는 다소 부담되지만, 문화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히 저렴한' 단위는 만화계에서 하나의 신 사조를 낳고야 만다.

당시 만화계의 시대상황은, 1988년 12월부터 발간이 시작된 주간 '아이큐 점프'가 '교훈 위주의' (혹은 표절, 무단인용, 편집 등으로 만들어진 해적판들) 어린이 만화와 '성과 폭력 위주의'(여전히 해적판으로 얼룩진) 성인만화의 중간에 있는 새로운 경향을 국내에 도입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었다. '헬로 팝', '제 4지대', '아마게돈'(!) 등 중견작가들의 다소 파격적인 작품들이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실력있는 신인들의 저돌적인 작품들 ('기계전사 109' 등)이 공존하는 등 갑자기 한국만화가 한단계 진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시대다. ...물론 그런 장미빛 전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초창기부터 같이한 여러 실험적 작품들은 줄줄이 계승자를 찾지 못한 채 종료를 맞이하고, 점차 일본식 편집부 제도의 폐해들(인기순위 지상주의, 작품의 획일화/유행화 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서울문화사(아이큐 점프)는 국내 사상 최초로 일본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일본만화를 라이센스 연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작품은 이후 한국만화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드. 래. 곤. 볼. 물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제대로 흘러간 것은 결코 아니다. 연재 시작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라이센스 계약을 채결하기 전부터 연재가 먼저 들어갔고(아마도 이것은 최대한 '구두계약' 까지만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현재도 일부 문헌에서는 아예 '불법 연재'라고 못박기까지 한다. 그정도까지의 극단적인 관점이 아니라도, 이는 기본적인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대상에 대한 반증이며, 해외만화 유입의 합법화 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보여준다. 물론 당시의 상황 자체보다도, 그런 불미스러운 상황들에 대한 어떠한 증언도, 인정도 심지어 변명도 없이 '그때 그사람'들이 여전히 만화계의 주류를 차지한 채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볼의 특약 연재는 이후 만화계를 바꾸어놓을 몇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도입한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좌철의 도입과 단행본 체계화이며,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성과 폭력을 유머의 한단계 자유로워진 표현이다(특히 성과 폭력을 '유머'와 결합시킨 것은 '고인돌' 등 일부 성인만화를 제외하면 전례가 거의 없다). 드래곤볼의 성과 폭력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 시각적 표현양식 등의 '히트 요인'들은 굳이 여기서 분석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너무나 널리 알려져있다(아니라면, 나중에 다른 지면에서 차근차근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해적판의 흐름에서 드래곤 볼이 정작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단행본화'의 문제였다. 드래곤볼 정도의 확실한 히트 수입 아이템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잡지연재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며,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단행본 시리즈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해서 (일본식 모델을 본딴) 잡지 소속 단행본 시리즈 '아이큐 점프 코믹스' 가 출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아이큐점프가 연재를 개시한 시점에서 실제로 일본에서는 단행본이 15-20권 가량 이미 나와 있을 만큼 장기간 연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잡지사로서는 당연히도 일본 현지에서의 장기간 연재로 그 인기를 검증받은 작품을 들여온 것이지만, 여하튼 아이큐점프에서 드래곤볼을 별책부록(좌철방식)으로 하여 매주 3-4회 분량의 연재분을 개시하는 빠른 연재속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래곤볼의 폭발적인 인기 속에서 팬들은 항상 '더빨리, 더 많이' 보기를 요구했다. 기존의 한국만화는 '대본소 만화' 식으로 한 시리즈가 완결된 형태로 나오는 방식, (주로 일본 만화 해적판) 에피소드 방식으로 각 권이 나름의 완결성을 가진 단행본 향식, 그리고 잡지 연재 분량을 직접 읽는 것 등 3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드래곤볼 단행본은 '연속적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되, 단행본으로 읽게 되어서 당장이라도 (아직 풀시도히지 않은) 다음 권을 읽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만화읽기 형식을 '강요'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해적판'이라는 화두가 등장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시까지의 해적판은 대부분 '원전을 구할 수 없는 해적판'이었다. 즉, 아무리 같은 작품의 다른 해적판들이 판을 쳐도 (바벨 2세 등 일부 유명만화들은 수많은 '해적판 외전'으로 유명하다) 일반인들이 그것의 비합법성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번듯한 만화사의 형식을 갖춘 듯하게 보였던 '콩콩' 등 출판사 판본들은 (사실은, 그 무성의한 '심의필' 도장이 주는 권위와, '정식 만화 출판사'의 만화에 대한 무신경함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진열, 판매가 되고 있었기에 오히려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전국의 문방구에 '드라곤의 비밀'이라는 이상한 소형 책자가 배포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판형, 출판사 정보, 번역, 인쇄질, 종이질, 제본 등 어떤 하나도 "이건 불법 불량 해적판 만화다"라는 의심을 도저히 사지 않게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국내 시장 내에서 합법적인 오리지날과 비합법적인 해적판 사이의 마찰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만들어서, 해적판의 불법성을 단지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닌, 본격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했다. ...그 가격은 바로 한 권당 500원!

드라곤의 비밀 시리즈를 낸 '호호 샘 코믹스'는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의 전례에 따라서 오렌지색 양장을 하고 있었으며, 세로길이가 기껏해야 10cm 가량밖에 안되었다. 위의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가 히트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물건이 그 드래곤볼의 '뒷부분'이었다는 사실이다. 거의 매주 4권씩 몰려나오는 엄청난 물량과 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은 조악한 편집, 조악한 번역, 조악한 제작방식 그 자체를 간단하게 무시해버리도록 했다. 애초에 '드라곤의 비밀' 1권은 아이큐점프 당시 연재분에서 기껏해야 4-5회 분량 뒤에서부터 시작했음을 볼때, '인기에 편승한 손쉬운 돈벌이'를 위한 것이었음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든, 이들은 이후 만화 유통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았다. 도매상마저도 거치지 않고 제작사의 '봉고차'가 직접 책을 소매상에 납품하고 사라지는 게릴라식 유통과 '죽어도 재판은 없다' 식의 일회성 등, 비합법 출판사를 규정짓는 일방향성이 그중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덕분에 이전보다 더 많은 만화팬들이 '매일 문방구/서점에 들려서 출시 상황을 체크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직접적으로 하나의 매니아군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자료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확실히 만화팬들의 만화 구매의 방식에 더욱 강력한 적극성을 요구하고 있었고, 이는 각 학급 등 제반 사회단위 내에서의 만화팬들간 가료 교환을 활성화시켰다. 

물론 '500원 판본'은 이후 더욱 확장되어갔다. '드라곤의 비밀'의 폭발적인 판매에 힘입어, 이들은 다른 일본 인기 만화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한쪽으로는 드래곤볼의 인기에 계속하여 편승하기 위해서 드래곤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다른 작품인 '닥터슬럼프'를 '드라곤 비밀의 열쇠'라는 (연상작용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제목으로 출시하는 등, '드라곤' 시리즈를 출시했다. 또한 다른 한쪽으로는 '피그마리온', '파트레이버'등의 다른 인기작들을 출시했다. 물론 상당수 작품들은 1권만을 내본 후에 판매성과가 저조하면 바로 출간이 중단되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검증된 초 히트 인기작'만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 또한 만화팬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연재중단되었을 경우 이후 이야기도 어떻게든 구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켜, '회현 지하상가'와 '중국대사관 뒷골목'으로 대표되는 '명동 세대'를 키우는 주요 원동력이 되었다. 즉, 이전에는 일부 지역의 학교들('여의도 고등학교'는 그중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을 주축을 했었던 '원판이라도 구해보는 적극적인 만화팬들'이 더욱 그 폭이 넓어져서, 여러 사람들이 용돈을 쪼개가면서 일본 원판(그리고 만화의 애니메이션 판을 보기 위한 일본 LD의 VHS 더빙판)을 구하게 된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컴퓨터 통신의 보급 등의 다른 주요 요인들이 같이 작용하고 있었지만, 이 또한 다른 지면에서 다루어보기로 한다). 

500원 판본은 또한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필요없는 해적판'의 시대를 선포했다. 기존의 해적판의 경우, 심의필 등 나름대로 '합법적인' 경로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비록 유령작가들의 프로덕션이라 할지라도 직접 원고를 그리는(베끼는) 작업이 항상 필수적이었다(물론 편법은 항상 있어왔다). 하지만 500원 판본의 시대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고, 단시간 대량 생산을 위해서 인쇄기와 화이트가 그 모든 역할을 대신했다. 즉, 원본을 복사, 바로 그 위에 화이트칠을 하고 번역글과 지문을 집어넣고 순식간에 인쇄를 해서 배포하는 방식이다. 물론 렇다고 해서 원본에 대한 훼손이 적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500원 판본은 검찰과 시민단체의 주목을 끄는 것을 최소한으로 방지하려는 일환으로, 작품의 폭력과 성적인 부분을 필요이상으로 삭제처리하였다. 물론 각종 이름의 번안 또한 필수적이었다. '양파 껍질'(벗어도 벗어도 계속 그 속에 또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플라나리아'(아무리 신체가 절단되도 다음 컷이면 다시 돋아나 있다!), '일본풍습의 한국화'(깃털치기, 잉어 걸기 등 도저히 한국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풍경들이 어엿한 한국 명절풍습으로 묘사된다) 등 악명높은 기법들이 여기서 탄생한다. 이전의 '베껴그리기' 해적판에서는 장면 자체를 아예 손봤지만, 이제는 장면에 대한 부분적 수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기에 이런 '만행'들이 저질려진 것이다(물론 모든 종류의 원작 훼손은 작품과 작가와 독자에 대한 범죄다). 

해적판 단행본의 분량구분은 '원본'과는 차이가 많아서 호흡조절에는 완전히 실패했지만, 막강한 분량으로 이것을 극복했다. 또한 해적판의 진행이 일본의 원본 진행속도를 '따라잡게' 되었을때, 미련없이 출간은 중단된다. 다만 드래곤볼에서 이 법칙은 깨지게 되는데, 연재분량이 3-4주정도쯤 쌓이면 (약 50페이지 정도) 그것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출시해버리고, 나머지 페이지(약 100 페이지 정도)는 다른 만화로 대충 채워넣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특히 드래곤볼의 500원 판본은 (적어도) 무려 3개의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런 진도경쟁은 더욱 가열되었다(물론 이런 출판사들은 하나의 출판사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명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번역 및 인쇄 스타일을 통해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이후 많은 일본 동시연재 인기작(란마 1/2, 시티헌터 등등)에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심지어 완간되어있는 시리즈의 경우에서마저도 도입되었다. 물론 이러한 관행은 항상 팬들의 욕을 먹었지만, '보너스로 억지로 끼워넣은' 만화로서는 오히려 소개 기회를 얻게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렌지 로드'의 짜투리로 끼워넣어졌던 작품인 '오렌지로드 II'가 아다치 미츠루의 국내 데뷔무대였다는 것은 대단히 재미있는 일이다('미유키'). 어찌보면 단순한 '유행'관념에 사로잡혀있는 출판사측이 예측하지 못했던 다양한 취향들이 표면화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한 것이다. 

500원 판본의 진도 경쟁이 한참 과열되었을 때, 정식 단행본이 아닌 잡지 연재분을 그대로 복사해오다 보니 인쇄의 품질은 더욱 조악해질수 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대만 해적판을 다시 가지고 와서 해적판으로 복사한 경우도 있었다('드래곤볼' 해적판에서 '기뉴 특전대' 멤버들의 이름이 모두 '귀鬼'자 돌림이 되었던 부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수요는 끊이지 않았고, 이러한 수요만큼 '오리지날' 라이센스판을 내는 쪽의 지분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에 대한 서울문화사의 대응은 지극히 미온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스스로 '일본과의 연재 시간 격차를 줄이기'에서 아예 '동시연재'라는 지극히 위험한 방식을 채택했다. 원고전달, 명절 및 휴일의 한일 차이 등 여러 측면에서 원고 관리를 힘들게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략을 택한 것은 그만큼 다급했다는 증거다. 

이러한 성공담에 힘입어, 오래지 않아서 500원 해적판은 모든 서점과 문방구의 한쪽 코너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선구자격이었던 '붐붐코믹스'의 전략을 거의 그대로 따랐고, 이러한 계기로 북두의 권, 씨티헌터, 란마 1/2 등 80년대 말-90년대초를 풍미한 초히트작들이 거의 고스란히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500원 해적판은 작품의 처절한 왜곡, 조악한 품질로 인한 만화에 대한 일반적 시각의 하향조정, 비합법적인 만화출판의 확대로 인한 만화시장 구조 부실화 등의 수많은 폐해를 나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급부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첫번째는 뭐니뭐니해도 '페이퍼백'의 실현이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라 일반 활자 서적의 경우에도 한국 단행본 출판물의 가장 큰 폐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렴한 페이퍼백 판본의 부재다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푸코의 진자'를 읽고 싶으면 7불을 내고 두꺼운 소책자 하나를 간단히 사면 되지만, 한국의 경우는 8000원짜리 단행본 3권을 사야한다). '가볍게 읽을 저렴한 판본'(페이퍼백)과 '소장하고 다시금 읽는 호화양장판본'(하드 커버)의 구분이 없기에, '한번 읽고 넘어갈' 책에 대해서 비싼 책값을 제대로 물고 사는 것이 매우 비경제적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대여점'의 비정상적인 확대로 이어지며, 판매시장의 부실화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500원 해적판은 진정한 '페이퍼백'이었다고 할 수 있다. 품질이 조악하여 대여점에서 장기간 대여해 줄 수 있을 정도에 미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하여 주소비층인 학생들이 구입하여 소장하기가 용이했다. 결국, 만화산업이 대여점문화의 독재에서 벗어나서, 판매 문화가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500원 해적판의 시장에서의 성공은 페이퍼백 문화라는 것을 한국에 도입할 수 있다는 하나의 모델로서 남을 수 있다. 이것은 국내에서는 특히 '소장' 개념이 희박한, 만화라는 매체에서 더욱 중요하다. 

두 번째 '업적'은 위에서도 언급한, '만화팬' 층의 확대다. 더욱 쉽개 다양한 취향의 만화가 소개되었고, 이런 소개를 바탕으로 모든 사회단위에서(특히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만화 애호 공동체가 폭넓게 생겨났다. 이들은 이후 단시간내에 90년대 만화계의 판도를 가로짓는 가장 중요한 집단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하게 된다. 

세 번째는 해적판의 '독립'이다. 500원 판본으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해적판과 제도권 한국만화들은 그 오랜 혼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동시에 이는 본격적으로 '일본만화로서의' 일본만화를 국내에 소개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사람들은 성운아가 한국 만화가의 이름이라고 믿지 않게 되었고, 어렴풋이만 들어본 일본의 선진적인 작품들을 하나씩 해적판으로나마 직접 만나게 되었다. '불량만화'급의 조아한 판본 속에도 때로는 몇발치 앞선 만화기법과 주제의식들이, 때로는 이질적인 문화가 담겨있었기에 그것은 '제도권'의 한국만화와 구분되었으며, 어떤 것이 일본만화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게 자리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해적판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낀 제도권 국내 작가들은 만협 등의 단체에서 해적판 자료집을 만들기 까지 하는 등, 해적판에 대한 공격과 비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비난을 하면서도 과거 자신들 스스로의 원죄(해적판 제작 행각)에 대한 아무런 인정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단지 '시대 탓'으로 돌리고 쉬쉬하면서 지나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이런 공격들은 명확한 역량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백만개의 시장현황 자료집들보다도 중견/원로 만화작가/출판인들의 집단적인 양심선언과 과거인정이 '만화계의 발전'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고양이 방울인 셈이다. 

이후 상당수의 신예만화가들의 작품경향을 좌우한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의 여파로 시작된 500원 해적판은, 그러나 라이센스의 증가와 소비자의 눈높이 향상 때문에 서서히 '고급화'되어가면서 600원, 800원, 1000원 판본을 거치면서 결국은 '유사 정식판본'으로 합쳐져서 표면에서 사라져 버린다. 



(5) 유사정식판본


1500원 시대의 전략: 유사정식판본

500원짜리 단행본들이 이 좁은 한국시장에서는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페이퍼백(염가, 조악한 인쇄품질과 더불어, 두 번 읽으면 제본이 떨어져 나가는 막강한 제본으로 인하여 '소모성' 서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장을 나름대로 만들어나가고 있을 때, 서울문화사의 1500원짜리 '정식 라이센스' 드래곤볼이 발간되었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고품질의 인쇄상태(사실,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그림체의 영향이 컸다), 당대 유행어 등을 적절히 배치시킨 나름대로 신경쓴 번역 등 ,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확실히 자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써 담배갑 크기보다 작았던 500원짜리 해적판과 확실한 차별화를 할 수 있는 '정상적인' 판형의 등장으로 인하여 해적판과 '정식 소장용' 판본의 이원화가 이루어지는 듯한 희망이 잠시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오히려 이러한 판형의 이원화를 역이용하는 사례들이 등장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1500원짜리 '소장용 판형' 해적판의 등장이다. 이들이 모델로 삼고 있었던 것은 다이나믹 콩콩 계열의 만화책도, 이전의 한국 만화 단행본 형식도 아닌, '드래곤볼'을 필두로 본격화된 '아이큐 점프 코믹스' 단행본이었다. 1500원짜리 판본들과 같은 판형에, 같은 가격 그리고 비슷한 편집 포맷을 지닌 일련의 만화책들이 '정식 라이센스' 단행본들과 대등하게 서가에 비치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500원짜리 해적판은 크기나 모양, 펼쳐보면 드러나는 품질 자체에서 확연한 차이가 났지만 1500원짜리 해적판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1500원 해적판들은 종이의 질, 인쇄품질, 1겹표지 사용 등 실제 품질에 있어서는 '정식 판본'들에 못미쳤으나(그렇다고 해서 결코 정식 판본이 절대적인 기준에서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것들은 대다수의 독자들의 독서에 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판형확대와 비교적 충실해진 번역 하나만으로도 많은 '일반'독자들은 기꺼이 속아넘어갈 준비가 되어있다. 무엇보다도, 이미 드래곤볼의 성공과 500원 판본의 대대적인 보급으로 인하여 일본만화에 대한 수요는 이미 확실하게 생겨나 있었고, 해적판 업계에서도 조금이라도 수익성이 더 높은, 즉 마진이 더 크고 판매가 될 만한 방식의 제품을 공급해주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셈이었다. 

이들의 중심 전략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정식 라이센스 판본과의 차이를 없애고, 스스로 정식임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첫 번째로 한 일은 500원 판본과는 차별화된, 그림에 대한 검열/수정의 완화였다. 먹칠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웬만한 묘사는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상상 가능할 정도까지 보존되었다. 사례로 설명하자면, 드래곤볼에서 거의 처음으로 선보인 청소년 만화에서의 여성 유두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에 대해서 500원짜리에서는 먹칠'옷'으로 가린다면, 1500원 해적판에서는 그대로 묘사하거나 혹은 효과음으로 살짝 가리기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출판사와 발간 시기에 따라서 삭제와 수정의 정도차이는 편차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500원 판본보다 느슨했다는 것은 사실이다(물론 500원 판본에서도 예외적인 경우는 있었다; 일례로 란마 1/2 의 초기 해적판 가운데 하나인 500원짜리 '람마 1/2'(90년 발간)의 경우, 1-4권까지는 어째서인지 아예 무삭제로 가는 '만용'을 부린 적도 있다). 

두 번째로 한 일은 저작권 보호 문구를 새겨넣는 일이었다. '본 도서는 일본 **출판사와 정식 라이센스를 맺었으며, 내용 일부 혹은 전체를 복제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류의 경고문이 책 앞 혹은 뒤에 보란 듯이 새겨져 있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한 술 더떠서, 자신들의 '합법성'을 설파하기 위해서 유령단체를 만들어서 그 이름을 내거는 일까지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1500원 해적판의 초창기 선구자 가운데 하나인 '한일만화연구회'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들의 경우 이 이름 하에 '그림터'라는 출판사를 표방하고 '킹 코믹스'라는 출판 라인을 두는 등 뛰어난 위장술을 발휘했다. 

세 번째는 나름대로의 적극적인 판매/홍보 전략 실행이었다. '동경대 최우수 도서 선정' 등의 자극적인 홍보문구(물론 진위 확인 따위는 관심사도 아니었지만)는 비디오 시장의 그것을 연상시켰으며, 각 동네 서점에 대한 적극적인 유통 노력을 통해서 해적판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 '정상적으로' 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500원 해적판의 경우 '불량스러워' 보이는 외견 때문에 소형 서점과 문방구 위주로 유통되었지만, 1500원 판본은 버젓이 만화를 다루는 모든 규모의 서점에서 거래가 되었다. 

위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1500원 해적판은 많은 경우 정식 라이센스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거래되었다. 초창기 이들의 주요 레퍼토리는 80년대 중후반을 풍미한 일본의 초히트작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그림터의 '북두신권'과 '시티헌터'는 '드래곤볼'보다는 사뭇 수용자층이 좁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했다. '켄시로'와 '사에바 료'를 '라이거'와 '우수한'으로 알고 있는 것은 마치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고쿠'를 '손오공'로 알고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레퍼토리들은 500원판, 혹은 '구호'로 대표되는 대본소용 해적판까지 이미 기출시된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다양한 '가지치기'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서 주로 500원 판본과 마찬가지로 동일 작가의 다른 작품('시티헌터' 작가의 전작인 '캐츠 아이' 등)을 발간 시도하거나, 유사 장르의 다른 작품들을 출간해보는 방식('북두의 권' 스타일의 격투물인 '사이버 블루' 등)을 취했다. 

하지만 물론 기본은 여전히 일본에서 대히트한 작품들 위주로 들여오는 것이었는데, 성공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예상외의 실패도 여러차례 있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츠루 아다치의 '터치'를 그림터에서 발간했던 것인데, 아직 다양한 일본만화의 문법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았으며, 또한 일본만화에 대한 왜곡된 기대감(특히 성적, 폭력적 묘사에 대한)을 품은 일반 독자들의 감수성에 파고드는 것에 처절하게 실패, 단 몇 권만을 발간하고 시리즈를 접었다. 사실 '이 만화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의 만화수준은 높습니다' 라는 식의 광고문구를 삽입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발행인 자신도 그다지 아다치 미츠루 식의 감수성에 상당히 낯설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집중적인 일본만화 홍수에 빠져든 3년 후에 동일 작가의 H2가 들어와서 성공을 거두었고, '터치'는 H1 이라는 상당히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제목으로 재발간되어 덩달아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얄궂게도'(?) 이때 그림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여하튼 많은 작품들은 인기가 부족하거나 일본의 진도를 곧바로 따라잡음으로써 시리즈 발행 자체가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도 500원 판본에서 성행했던, 1,2회 분량만 모아놓고 뒤에 다른 만화를 끼워넣음으로써 단행본 분량을 채워서 파는 극악한 상술은 1500원 판본에서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즉, 아무리 못해도 4-5회 분량정도까지는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인기부족에 대해서만큼은 냉정하리만큼 가차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완결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괄구입하기도 여의치 않았던 것은 역시 해적판이기 때문에 '재판 발행'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여담이지만, 2001년 현재 여러 대형 만화출판사들의 출간/유통 형태는 여러모로 이 당시의 해적판 만화출판사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부실하다). 

1500원 해적판의 폐해 중 첫 번째는 역시 정식 라이센스와 해적판의 외견상 구분을 대단히 모호하게 함으로써 정식 라이센스 업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식 라이센스되어서 들어오는 작품은 90년대 초반 당시에는 대단히 한정되어 있었고(곧바로 단행본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잡지연재를 거친 것을 묶어서 내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충돌의 지점이 되는 작품들은 매우 숫적인 측면에서는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드래곤볼'이라는 막강한 히트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권리 요구의 목소리는 커질 수 밖에 없었고, 서울문화사는 지속적으로 '정식 판본' 캠페인을 벌이게 되었다. 그리고 라이센스 업체들의 단속요청들이 씨앗이 되어 93년에 대대적인 해적판 단속이 실시되었다(유감스럽게도 만화에 있어서 최대의 비극은,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만화 전체의 이미지가 같이 나빠져버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1500원 판본 시장이 500원 판본 시장을 완전히 흡수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물론 500원 판본이라는 초저가 페이퍼백 시장이 한국이라는 좁은 시장에서는 정상적인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든 형식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파악 가능한 일이지만, 500원 시장의 소멸과 함께 소모성 페이퍼백에 대한 실험이 현재까지도 완전히 중단되다시피 했다. 다양한 판본과 가능성들의 실험보다는, 단일화된 (그나마 일본의 모델을 그대로 수용해서 이미 한국시장에 대해서는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었던) 형식의 상품규격과 소비형태를 주류에서 고착화시켰다.

세 번째는 2001년 현재 더욱 큰 문제로 번져버린 과도한 종수 발행의 단초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일본 작품들을 한꺼번에 많이 수용해오는 것과 더불어, 단일 시리즈를 원작보다 훨씬 많은 권수로 만들어내는 상술까지 겹쳐서 시중에 발간되는 다양한 만화책을 계속 사보는 일이 한층 어려워졌다. 능력이 되는 만큼만 사보면 될 것 아닌가, 라는 타당한 주장과는 달리, 시중에 나와있고 보고 싶으나 돈이 부족한 경우들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늘어난 대여 수요로 치환되었고, 1500원 판본들은 이전의 500원 판본들과는 달리 실제로 대본소, 책 대여점 등에 비치하기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검증된 초창기 히트작들이 한국에서도 히트를 치자, 만화가 여러 책 대여점에서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후에 만화대여점이라는 형식으로 업종전환을 하게 되었다(물론 1500원짜리 판본의 등장과 히트만으로 이런 일들이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기존 만화 출판사들이 이것을 유통왜곡으로 규정하고 저항하기보다는 같이 편승해서 단행본 종수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적판과 라이센스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500원 판본이 소멸함에 따라서, 둘 사이의 가격차이 또한 사라졌다. 몇몇 해적판 업체들의 경우 정식으로 출판 관련 기구에 납본을 하는 등 아예 합법적인 활동을 벌이기까지 할 정도로 구분은 모호해졌다(저작권 단속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해당 라이센스 홀더 - 여기서는 일본 출판사 -가 직접 움직이지 않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단속할 수 없다). 결국 이런 방식의 '유사정식판본'은 해적판이 거의 소멸한 현재까지도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또다른 유사정식판본

사실, 해적판은 일본 만화에 대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이야기가 나올 서구만화를 이야기하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작가의 것이라 할지라도 해적판은 버젓이 만들어진다. 적어도 해적판의 정의에 '저작권자인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단으로 찍어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의 불법출판물들이 정식 계약 판본들과 외관상, 혹은 실질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충분한 해적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작가 작품의 해적판의 경우, 해외 만화의 해적판과는 달리 노골적인 불법 제작 및 유통의 문제라기보다는 허울 좋은 '정식' 출판사가 작가의 의향을 묻지 않고, 인세를 정당하게 지급하지 않는, 한마디로 '사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정식으로 문서화되어 체결된 계약서로 각자의 권리들과 거래관계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에게 있고, 권리를 일부 위임받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 유통한 모든 책들은 '해적판'이다. 하지만 이런 원론적인 차원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대화출판사' 등의 극명한 사례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92-93년 경에 김동화 선생의 '멜로디와 하모니', '레오파드' 등을 재출간했는데, 작가와의 합의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인세 지급도 함께 말이다. 이런 경우라면 확실한 해적판이라고밖에 칭할 길이 없다. 작가와 사전합의가 있었던 작품, 없었던 작품 다 묶어서 한꺼번에 CD-ROM으로 구워서 출시되었던 '고유성 SF 걸작선' 등도 비록 출판물의 형태는 아니지만 거의 해적판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식 판매집계, 정당한 인세지급 등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사실 이런 부분에서의 불법과 사기는 한국만화 출판계에서는 현재까지도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국내작가 만화의 해적판화가 '출판관행'이라는 모호한 말로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일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덧글

  • 닥슈나이더 2014/12/09 16:05 #

    허리케인 죠 애니의 경우에.. 어쩌면... 한국하청으로 그려서.... 허리케인죠 그린사람과 하청의 원화의 사람이 같을지도..ㄷㄷㄷㄷ(70년대의 허리케인죠 만화가 아마 소년중앙인가의 별책부록으로 줬었던것 같은......... 어렸을때 기억...)
  • 닥슈나이더 2014/12/09 16:14 #

    추가로... 80년대 초반에도 90년대의 500원짜리 판본 크기의 해적판이 팔렸었습니다...
    아마 100원이었던것 같은 기억이.....

    내용은 고르고13, 자이언트의 별 등등 이었던 기억이.......

    90년대의 500원짜리 판본중 그때 원고를 추가로 찍어서 나오는 것도 있었구요......

    그리고 90년대의 성인물로 공작왕도 나름 히트를.......
    물론 전 도시의 욕망의 방의표가 가장 멋찐 캐릭터 였지만요...^^;;
    (본문에는 도시의 사냥꾼이라고 쓰신듯...^^;; 도시의 사냥꾼은 아마 봉이신 최양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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